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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ABU'S TAEKWO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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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eptember 30, 2014, after retiring from the job I had been with for a long time, I took a moment to pause and prepare for a new challenge.
At that time, I worked as a social worker for one year at Saesaengmyeong Village, located in Beopseong-myeon, Yeonggwang-gun, Jeollanam-do.

This place operates both a local children’s center and a group home, and spending time with children who each carried their own stories and emotions—laughing and crying together—left a deep impression on my life.

That year, in which I relearned responsibility, care, and the warmth of human connection, strengthened my perspective on the world and fortified my inner self as an instructor.

The experience I gained there will always remain a warm core throughout my journey ahead.

One Year at Saesaengmyeong Village

20대,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세계를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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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은 태권도였다. 받은 사랑과 은혜를 내가  사랑하는 태권도로 나누겠다는 마음, 그것이 나를 중앙아시아로 향하게 한 첫걸음이었다.

부르심과 첫걸음: 중앙아시아에 태권도의 혼을 심다
 

[배움의 시간과 지도자의 길]
태권도를 다시 삶의 중심에 두기로 결심한 뒤, 먼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지도자로서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자 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태권도장에서 보조사범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관장님은 태권도 기술뿐 아니라 지도자의 정신과 책임감,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적 자세까지 몸소 보여주신 귀감이었습니다. 저는 가까이에서 그분의 지도 철학과 사범으로서의 자세를 배우며 태권도 지도자의 기본을 익혀 나갔습니다.
이 시기 국기원 사범자격 과정을 이수하며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공식적인 자격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95년 여름, 러시아와 타지키스탄으로 떠난 21일간의 단기 태권도 선교 활동은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낯선 땅과 낯선 사람들 속에서 태권도가 단순한 무술을 넘어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활동을 계기로 세계태권도선교회 단장인 목사님께서 저를 타지키스탄에 파견할 사범으로 선택하셨고, 깊은 고민 끝에 저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결단과 타지키스탄 후잔에서의 첫걸음]
1995년 12월 12일. 안정된 생활과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홀로 타지키스탄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시오.”

 

기내에서 드린 이 기도는 이후 오랜 세월 해외에서 태권도를 개척하고 지도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신앙과 사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후잔에 도착한 뒤에는 선민교회 소속의 ‘선민 태권도’를 맡아 본격적인 지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선민교회 목사님의 적극적인 지원과 후원 아래 후잔을 중심으로 치칼롭스크, 가푸롭, 가이락굼 등 총 4개 지역의 태권도 활동을 맡아 현지 수련생들을 지도했습니다.
낯선 언어와 환경 속에서도 각 지역을 오가며 수련생들을 만나고, 태권도의 기본기와 품새, 예절과 정신을 하나씩 전하며 현지 태권도의 기반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약 1년 반 동안 이어진 이 시기의 활동은 단순한 단기 파견을 넘어 이후 소그드 주 전역으로 태권도 활동을 확대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0대의 이 첫걸음은 훗날 여러 지역에 태권도 클럽을 세우고 지도자를 양성하며 조직적인 태권도 체계를 구축하게 되는 30대 여정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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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필라델피아태권도 관장님

"소그드 주를 중심으로 한 빌라델비아 태권도 연맹의 구축과 확장"

구축과 확장: 소그드 주에 태권도의 기반을 세우다
20대에 태권도에 대한 방향과 맥락을 세웠다면, 30대는 이를 현장에서 구축하고 운영하며 확장해 나간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형과 함께 타지키스탄에서 빌라델비아 태권도를 창립하고, 연맹 체계를 갖춘 조직적인 태권도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소그드 주 6개 지역으로의 확장
활동의 중심지는 치칼롭스크(Chkalovsk, 현 Buston)였습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후잔(Khujand, 구 Leninabad), 가이라쿰(Kayrakkum, 현 Guliston), 업치칼라차(Ovchi Kalacha), 가지온(Goziyon), 키스타쿠스(Kistakus) 등 소그드 주 총 6개 지역에 태권도 클럽을 설립했습니다.
각 지역에는 담당 보조사범을 배치하고 주 3회 정기 수련을 실시하며, 연맹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태권도 교육을 운영했습니다.

정기 심사와 소그드 주 태권도 챔피언십
매년 2회의 정기 심사를 실시해 소그드 주 각 지역의 수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한 차례 심사에 적게는 약 150~200명, 많게는 약 300명의 수련생이 참가했으며, 정기 심사는 각 지역 수련생들이 함께하는 연맹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소그드 주 단위의 공식 대회인 소그드 주 태권도 챔피언십을 정기적으로 개최했습니다. 당시 행정체계상 오블라스나야(Областная) 대회로 운영되었으며, 소그드 주 전역의 선수와 수련생들이 참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국내 전국대회와 국제대회에도 지속적으로 선수들을 출전시켜 다양한 대회 경험을 쌓도록 했습니다.

정부 지원과 시범단 활동
대회와 심사 등 주요 태권도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현지 정부로부터 행사 장소 제공과 상장 제작 등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 태권도 시범단도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많게는 한 달에 2~3회, 적어도 두 달에 한 차례 정도 스포츠·문화·학교 행사와 국가 행사, 독립기념일 행사 등 다양한 무대에서 태권도 시범을 펼쳤습니다.

연맹 운영과 제자 양성
치칼롭스크에는 빌라델비아 태권도 연맹 사무실을 두고 소그드 주 태권도 활동의 행정과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대회, 심사, 검정, 검정 축하식 등 주요 행사를 연맹을 중심으로 기획·운영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 많은 유단자와 제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30대는 빌라델비아 태권도 연맹을 중심으로 소그드 주 6개 지역의 태권도 활동을 구축하고 운영하며, 관장으로서 연맹을 이끌어간 시기였습니다.

"40대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곁에서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주신 부모님이 계셨고,

태권도를 이어가던 시간 속에서 말없이 함께 흘러가 주던 시간들은 

나의 정신과 몸을 회복시키며 다시 일으켜 세우는 큰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40대의 여정,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2012년 5월, 17년간의 타지키스탄 생활을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삶의 방향을 찾아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과정을 공부하며 새로운 준비를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태권도 현장에도 다시 복귀했습니다.


태권도 현장으로의 복귀
초등학교 토요 태권도 프로그램과 방과후 태권도 교실, 중학교 태권도 특별활동을 지도했으며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2013년에는 대한태권도협회 주관으로 국기원에서 열린 품새 심판교육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교육을 마치는 과정에서 한국대학태권도연맹 품새 심판위원장의 제안을 받아 테스트를 거친 뒤 품새 심판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심판으로 품새를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일반부 품새대회에도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차례 대회에 참가하고 입상하면서 품새를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의 차이를 경험했습니다.

2014년, 선수 그리고 정부파견사범
2014년 대한태권도협회에 정식 품새 선수로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사회복지 전문과정을 졸업해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제7회 나사렛 총장배 전국태권도 품새대회에서 3위에 입상했습니다.
이후 지역아동센터 그룹홈에서 생활지도교사로 근무하며 태권도와 사회복지 활동을 함께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국기원의 정부파견 태권도 사범 모집에 지원해 선발 평가와 시험을 거쳐 합격했습니다. 2014년 10월 국기원과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2월 다시 타지키스탄으로 출국해 정부파견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타지키스탄으로

2014년 1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약 6년간 타지키스탄에서 국기원 정부파견사범으로 활동하며 태권도 지도와 제자 양성, 교육과 보급, 국내외 대회 참가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5년에는 2급 국제사범 자격을 취득하고 평택 세계태권도한마당에 심판으로 위촉되어 활동했습니다. 2016년에는 필라델피아태권도연맹 심사와 태권도 페스티벌에서 상임심판으로 활동했으며, 2017년에는 안양 세계태권도한마당에 심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주타지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이 주최하고 20여 개국의 대사들이 참석한 ‘한국의 날’ 행사에서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며 한국 태권도를 알렸습니다.

2019년, 타지키스탄 품새의 새로운 기록

2019년에는 제자들을 이끌고 우즈베키스탄 남한강 오픈 국제태권도대회에 참가해 품새 부문에서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했습니다.

같은 해 평창 세계태권도한마당에서는 타지키스탄 여제자가 주니어 품새 부문 3위에 입상해 동메달을 획득하며, 타지키스탄의 세계태권도한마당 품새 부문 역사상 첫 메달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태권도 공인 8단에 합격하고 1급 국제사범과 호신술 사범 자격을 취득했으며, 자카르타 아시아태권도한마당에는 심판위원으로 초청되어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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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준비, 새로운 현장으로

2020년 6월, 타지키스탄 정부파견사범 활동을 마치고 귀국하며 50대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국가로의 재파견을 준비할 수 있도록 국기원과의 계약이 6개월 연장되었고, 국내에 머물며 재평가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부천에서 약 두 달간 훈련에 집중하며 품새와 겨루기, 자유품새와 특기기술, 언어 평가 등 다음 파견을 위한 과정을 다시 준비했습니다.

2020년 12월 국기원 재평가에서 품새와 겨루기 두 분야 모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건강상의 문제로 치료와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후 2021년 3월 약 2주간의 입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다음 파견을 기다리며 국내에서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훈련의 시간으로

다음 파견이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러시아 파견을 준비하며 국내에서 대기했지만, 2022년 7월 예정되었던 러시아 출장과 현지 활동이 국제 정세로 인해 최종 취소되면서 대기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국내에 머무는 동안에도 정부파견사범으로서 현장에 다시 섰을 때 필요한 지도 역량과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훈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국 품새대회 출전도 이어갔습니다.

대회 출전의 목적은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는 것보다, 정해진 규정과 평가 기준 안에서 직접 경쟁하며 자신의 기술 수준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022년 나사렛 총장배 전국태권도 품새대회와 2023년 우간다 출국을 앞두고 참가한 상지대학교 총장배 전국태권도 품새대회에서 각각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국내 대기 기간의 훈련과 대회 출전은 다음 파견 현장에서 보다 나은 기술과 경험을 지도에 활용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새로운 파견지, 우간다

오랜 대기와 준비 끝에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파견지가 아프리카 우간다로 결정되었습니다.

우간다 현지의 요청에 따라 국기원은 저를 정부파견사범으로 우간다에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저 역시 새로운 대륙에서 태권도를 보급하는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해외 지도 경험과 국내 대기 기간 동안 이어온 훈련과 준비를 바탕으로, 이제 그 경험을 아프리카의 새로운 현장에서 이어가고자 했습니다.

우간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동안 러시아어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언어를 익히며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보급해야 했습니다.

우간다 파견 이후에는 우간다군(UPDF) 태권도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특전사, 군사경찰, 정보국 등 3개 부대에서 차출된 군인들을 대상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군 태권도 지도와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마케레레대학교에서는 태권도 클럽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을 지도하며 대학 태권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교도소와 경찰, 학교 등 여러 기관과 단체를 대상으로 태권도 보급 활동을 확대하고 있으며, 수도권에 머무르지 않고 우간다 북부와 서부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태권도가 확산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해외 태권도 지도 경험은 이제 아프리카 우간다라는 새로운 현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언어와 환경 속에서 국기원 정부파견사범으로서 태권도 교육과 보급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현재 진행 중인 50대의 여정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50대 - 더 단단하게, 더 높이, 더 성숙하게"

“An Unfinished Journey in My 50s – Stronger, Higher, and More M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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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부의 여정 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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