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사부 타지키스탄과의 인연
1995년, 단기 선교를 준비하며 국내에서 수 개월간 시범 훈련을 이어온 김사범은 그 해 여름, 시범단 일원으로 타지키스탄 두샨베와 후잔드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간의 태권도 시범과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현지에서 태권도에 대한 반응과 열망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되었고, 이후 귀국한 뒤에도 선교 사범을 요청하는 후잔드의 연락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원래 파견 예정이던 사범이 철회함에 따라, 세계태권도선교회 시범단 단장님은 사부님을 적임자로 지목하였고, 3개월간의 고심 끝에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결단으로 1995년 12월 12일 타지키스탄에 재입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단기적 파견이 아닌, 23년에 걸친 사명자의 길로 이어졌으며, 후잔드, 치칼롭스크, 가이락굼, 가푸롭, 대통령학교 등
수그드 전역에 태권도 보급과 인성 교육, 지도자 양성의 기틀을 놓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은 태권도를 넘어, 사람을 세우고 세대와 민족을 잇는 사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 그리고 선민태권도 관장의 길
김사부는 기술보다 인격, 경쟁보다 내면의 중심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태권도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책임과 절제, 공동체 속에서의 존중을 가르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관장의 길’은 김사부에게 단지 직책이 아닌,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태권도는 그에게 몸을 단련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진심을 전하는 도(道)의 길이었으며, 그 철학은 지금도 김사부의 수련과 지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1995년, 단기 선교 시범단의 일원으로 타지키스탄 후잔드시에 있는 선민교회를 처음 방문하였습니다. 일주일간의 태권도 시범을 통해 현지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작은 인연은 곧 더 큰 사명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귀국 후, 선교사범 파견 요청이 지속되었고, 시범단 단장님의 결정에 따라 저는 타지키스탄으로 다시 파견되게 되었습니다. 제 의사와 무관하게 이미 현지에 파견 사실이 통보된 상태였지만, 3개월의 깊은 고민 끝에 저는 그 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뒤, ‘선민태권도’ 관장이라는 무게 있는 임무를 맡게 되었고, 선민교회를 중심으로 후잔드시와 츠칼롭스크시, 가이락굼시, 가푸롭시 등 인근 4개 지역에서 태권도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민태권도’는 단순한 체육단체가 아니라, 믿음과 인격, 질서를 수련의 근간으로 삼는 태권도를 신앙으로 실현하기 위한 이름이었습니다.
1996년 10월, 김사부의 형님이 타지키스탄 후잔드를 처음 방문하면서 형제 간 태권도 사역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97년 4월, 수도 두샨베에 정착한 형님과 함께 김사부도 현지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고, 인근 도시 투르슨조데에서 도장 개관을 준비하던 중,
5~7명 규모의 무장 민병대와 갱단이 총기를 들고 위협하는 사건을 겪으며, 생명의 위협 속에 사역지를 북쪽 치칼롭스크로 옮기게 됩니다.그곳에서 두 형제는 ‘필라델피아태권도’라는 이름을 정하고,
성경 속 형제의 사랑 (Phileo + Adelphos)이라는 의미를 담아 치칼롭스크 3번 학교에 태권도 도장을 개관합니다.
천 위에 손수 염색하고 직접 마크를 제작하며, 단순한 무도장이 아닌, 사명과 철학이 담긴 공동체적 태권도 교육의 시작을 알렸습니다.3번 학교 교장의 따뜻한 환대 속에 공식 수련이 시작되었고, 30여 명으로 시작된 도장은 첫 승급심사에서 50명이 응심할 정도로 지역 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시기는 이후 이어지는 모든 태권도 사역의 뿌리이자 생명의 씨앗이 되었으며, 김사부의 태권도 철학인 Discipline(규율), Honor(명예), Truth(진리)가 처음 뿌리내린 결정적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태권도 태동
총구 앞에서 멈춰선 발걸음 치칼롭스크 정착의 전환점

필라델피아태권도연맹 창립과 김사부 활동 (1998~2012)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한 공식 태권도 연맹
1998년 12월 25일, 김사부와 형님은 타지키스탄 수그드 주 치칼롭스크시에서 ‘필라델피아태권도연맹’을 창립하고, 현지 체육국에 공식 등록함으로써 정부 인가를 받은 공인 태권도 단체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는 형제의 사랑이라는 성경적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그 정신에 따라 사랑, 절제, 인내를 바탕으로 한 태권도 교육을 실천해 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연맹은 국기원으로부터 정식 심사코드를 부여받아 직접 승단 심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후잔드, 치칼롭스크, 가이락굼, 가푸롭, 히스테바르즈, 옵치칼라차, 고지온, 대통령학교 등 약 10개 지역에 걸친 클럽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 전역에서 체계적인 태권도 교육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정기 수련, 지도자 교육, 승급 및 승단 심사, 각종 대회와 시범 활동을 통해 태권도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인성교육 도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승단 심사 합격자에게는 별도의 축하식을 거행하며,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의 위상이 담긴 공식 단증을 수여하는 과정을 통해 태권도의 권위와 가치를 지역 사회에 깊이 심어주었습니다.
김사부는 연맹의 공식 심사위원장으로서 제1회부터 제12회까지의 모든 승급 및 승단 심사를 직접 운영하고 지도하였으며, 2012년 5월 11일, 약 17년에 걸친 헌신적인 사역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교육 철학과 태권도 정신은 지금도 지역 사회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현지 태권도인들 사이에서 기억되고 계승되고 있습니다.
치칼롭스크 대통령학교에서의 태권도 지도 (2010–2011)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약 2년간, 타지키스탄 수그드 주 치칼롭스크시 노비 크바르탈에 위치한 대통령학교(Maktabi Prezidenti)에서 태권도 강사로 임명되어 정규 체육 수업 및 방과 후 특별활동을 통해 태권도를 지도하였습니다.
대통령학교는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수 학생들이 모이는 국립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이곳에서의 태권도 수업은 단순한 체육 활동을 넘어 품성과 리더십을 기르는 인성교육 과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김사부는 체계적인 태권도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매 수업마다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태권도의 기본기부터 고급 기술, 그리고 도장 예절과 공동체 정신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또한 정기적인 시범과 승급심사를 통해 수련생들의 동기를 고취시키고,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시기의 수련은 절제, 존중, 책임감, 인내 등 태권도의 핵심 가치를 통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인격과 건강한 신체를 함께 갖출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국가 교육기관에서의 태권도 지도 경험은 김사부에게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태권도 정신의 확산 가능성을 깊이 체득하게 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약 2년간, 타지키스탄 수그드 주 치칼롭스크시 노비 크바르탈에 위치한 대통령학교(Maktabi Prezidenti)에서 태권도 강사로 임명되어 정규 체육 수업 및 방과 후 특별활동을 통해 태권도를 지도하였습니다.
대통령학교는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수 학생들이 모이는 국립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이곳에서의 태권도 수업은 단순한 체육 활동을 넘어 품성과 리더십을 기르는 인성교육 과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김사부는 체계적인 태권도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매 수업마다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태권도의 기본기부터 고급 기술, 그리고 도장 예절과 공동체 정신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또한 정기적인 시범과 승급심사를 통해 수련생들의 동기를 고취시키고,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시기의 수련은 절제, 존중, 책임감, 인내 등 태권도의 핵심 가치를 통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인격과 건강한 신체를 함께 갖출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국가 교육기관에서의 태권도 지도 경험은 김사부에게 교육자로서의 사명과 태권도 정신의 확산 가능성을 깊이 체득하게 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태권도 시범단 – 무대로 전한 태권도의 품격
김사부는 필라델피아태권도 시범단을 창단하여,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닌 태권도의 철학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무대로서 시범을 준비해 나갔습니다.
학교 행사, 국가 기념일, 지역 스포츠 대회, 각종 태권도 심사 및 경기장 등 해마다 수십 회에 이르는 시범 요청을 정성껏 준비하며
태권도의 고난도 기술과 단체 시범, 호신술, 격파 등을 선보였고, 그 과정 속에서 지역 사회에 태권도의 인지도와 신뢰를 쌓아 올렸습니다.
시범은 단지 공연이 아니라 도장에서 익힌 훈련의 결실이며, 김사부에게 시범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태권도의 가치를 말없이 증명하는 언어였습니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진심으로 기억되는 시범단의 발차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